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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뿌리와 향기

백승뜸 | 2009-10-12 15:20 | 조회 8993



         
          우리민족 뿌리와 향기

                                       글: 목 관호



- 단군은 역사적 인물 이다 -

민족의 역사적 사상과 개인의 종교적 사상은 별개이며 종교의 절대주 신에 대한 믿음이 근간이면 족하리라 생각 한다.

어떤이는 “단군”하면  종교적으로 먼저 생각 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 측면에서 단군을 보아야 하며, 우리민족의 뿌리를 확인 하는 과정에  우리나라 상고사 최대 자료인 “부도지(符都誌)”를 통해 세계를 지배 이화세계를 펼쳤던 우리의 웅대했던  역사를 재 조명키로 한다.





- 부도(符都)의 뜻 -

부도(符都)의 뜻은, 단군 조선 때에 수도를 부도라 하였으며,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 라는 뜻이다.

부도지 기록에 의하면 인류가 처음 생겨나기 이전에 지구는 물체라고는 없었고 따뜻한 햇볕만이 내려 쪼일뿐 이었다.
어느날  공간중에 소리인 음(音)이 나왔으며, 음(音)으로 인해 인류의 낙원인 마고대성, 실달성,허달성이 나란히 나왔고, 사람이 생겨나 땅에서 솟는 “지유”를 마시며 서로 사랑하고 살았다.

사람이 많아지니 양식인 지유가 부족해지고 배고품을 견디지 못해 금기시 되었던 포도열매가 땅에 떨어져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포도주”를 마시자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의눈이 떠지고 서로 미워하고 타락 하자 낳는 아기가 짐승 처럼 생기고 하여 지금까지 살던 낙원인 “마고성”에서 추방되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마고성에서 배운 문화와 지식으로 인류 문화의 기초가 되고 흑인.백인,황인종 으로 나뉘어 살게 된다.





- 동이족 大 韓國人 -

황인종 중에서 인류 시원(始原) “마고”의 직계 장자손은 단군으로 동이족 이라 부르는데 태양을 숭배하던 태양족 이라 부르기도 한다.  





- 인육(人肉)을 먹던 습성의 한족(漢族)

중국은 한족(漢族)으로 인육(人肉)을 먹던 습성이 있던 족속으로 인본주의 철학자인 공자의 예기(禮記)편을 보면 인육을 젓갈로 담그는 방법과 인육을 먹는 공자의 모습이 기록 되어 있고, 당나라 때에는 인육을 시장에서 개고기 보다 싸게 팔았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인 한족이 쓴 “중국의 인육문화” 라는 책도 있다.  







-  중국의 건국 신화는 동이족 건국 족보를 모방 -



우리민족은 동이족 이며, 부도지는 창세이래 우리민족의 족보나 다름
없는데, 동이족 창조설에 중국에 대한  근본 개념이 없던 중국이 그대로 그들의 건국 신화로 배꼈서 둔갑 되어 세월이 지난후 우리나라 공영TV에서는  “중국의 건국신화”로 소개하여  동북공정을 도와 준적이 있다.   부도지와 우리의 고대 민속신앙에서의  인물인 궁희,소희 부분과 “복희”,“여와” 기록의 스토리가  중국의  건국 신화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더욱이, 일제는 우리의 단군 이전의 역사를 없에고 단군을 실존인물이 아닌 설화속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 부도지에서 음(音)은  “천지창조” -

부도지 에서의 音은 天地創造이다.   그래서 音이 天地를 창조 하였
다는 說은 “부도지”가 처음 이다.
소리로  최초의 신인(神人) “마고”가  나왔고 마고가 단성생식으로 궁희와 소희 두 딸을 낳았다.
그리고, 궁희는 4 남자(천인)를 소희는 4여자(천녀)를  낳아 땅에서 솟는 지유(地乳)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천인이 네천녀와 결혼하여 3남3녀를  낳았다.  

네 천녀,천인의 후손들이 몇 대를 지내는 사이 족속이 불어나 각각 3000사람이 되었다.  -----    단군은 마고의 장자 종가(宗家)자손이며 전세계의 종주국 황제 였으며 이어 발해,부여,고구려, 고려,통일신라.이씨 조선, 으로 이어진 적통민족이 한국인 “동이족”이다.
중국은 한족으로  동이족(태양족)이 아니며 고대 적통 국가의 핏줄이 아니다.






- 인류의 종주국(宗主國) 동이족, 중국은  속국 -


간단히 다시 설명 하여,  “부도지”에 의하면 우리민족은 전인류의 종주국 이었고 창세 이래 유서 깊은 인류직계 혈통으로 지금의 히말리야산 근처 파밀고원 마고성에서 인류의 시작이 된이래  마고- 궁희 - 황궁-유인-환인(7代)- 환웅(18代)-단군(47代)에 이르는 동안은  우리민족은 유구한 세월 동안 세계의 지도적 종주국 이었고 한국어는 세계공통어 였음을 한국 상고사연구 최고 자료책인 “부도지”는 밝히고 있고,부도지는 인류의 창세기 이며 고대 사료책인  “한단고기”를 통해서 우리민족의 근원을 볼 수 있다.







- 단군 조선의 멸망 -

이렇듯 막강했던 우리민족은 고대 단군조선이 멸망 한 후 급속도로 기울어진 국력은 민족사상인 ‘삼신복본사상“이 국가적 혹은 정치적 지지
기반을  잃고 표류 하면서 기(氣),화(火),수(水),토(土)이론에 의한 민족 사상은 천대와 멸시 탄압을 받았다.

고구려,신라,백제에 불교의 문화가  만들어 지고 이조는 유교국가가 되면서 고대 이후 이어져 내려오던 우리민족의 고유한 정체성 또한 잊어져 같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찰의 한쪽에 있는 조그만 암자로 자리하고 있는 “삼신각”은 불교문화가 민족사상을 흡수 코져 했던 흔적이며 오랜세월 동안 민간신앙으로 그명맥이 이어졌는데 일제때는 한국독립 운동의 9활 이상이 三神思想에 의해 그맥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의 반도 사학 -

이조말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제에 의해 역사학자를 내세워 우리의 유구한 고대 역사가 하루아침에 없어져 단절 되고 고대역사를  곰과호랑이를 등장 시킨 신화를  만들어 단군을 실존 인물이 아닌 전설적 인물로 만들고 한국의 영토를 한반도에 국한된 작은 영토의  민족으로 변질 시켜 오늘에 이르렇 으니, 그렇게 만들어진 “반도사학”을 지금까지 정식 교육으로 우리는 배우고 있다.  






- 중국의 동북아 프로잭트 -

지금부터 이미 20년 이상전 부터 “동북공정”이라는 장기 프로잭트에 의해 우리의 고대역사 흡수에도 부족 하여 고조선,발해,부여,고구려,신라  역사를 자신들 민족의 역사로 조작 하여 대 한국인 민족을 더욱 작게 만드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제에 의해 편집된 반도사학 역사가 지금은 기정 사실로 우리가 받아 들이는 것 처럼 중국이 꾸며낸 역사라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기정 사실로 변하여 새로운 국토 영유권 분쟁의 불씨로 발전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  민족의 뿌리 재 조명 -

이에 필자는 역사학자는 아니나,  자랑스런 대한국인 국민의 한사람의 자격으로  우리가 배운 반도사학으로는 땅속에서 저절로 생겨진 민족이 아닌데 반도사학으로는 민족의 역사적 근본을 찿을 수 없으며 단군 이전에도 우리민족이 문화를 형성하며 이땅에 살았을 터인데 단군 신화로 우리민족이 시작 되었다는  막연한 설 만으로  역사의 전체로 볼수 없다 생각 했다.



필자는 단군 이전의 고대 역사를  한단고기와 부도지,천부경에서 볼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 고대사 최고자료인 “부도지”와 “한단고기” 역사서를  근거로 우리의 뿌리를 다시금 확인 하고져 이 장을 만든 것이다..






-  한국의 반도 사학적 역사와 고증 방법 -

우리가 지금까지 확인되고 인정한  역사적 고증 방법으로는 유물의
발굴을 통한 해법 증거와 입증된 역사서 발굴에 의한 인정 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공정히 입증된 사실의 바탕이 아닌, 우리조상의 역사인 발해, 부여,고조선,고구려,신라 역사를 짜깁기식 이어붙이기 방법으로 자기들 조상이라며 원래의 고대 비석 글씨를 지우고 허위의 새로이 글씨를 새겨넣은 고대 비석 글자를 만들어  중원 대륙에 있는 우리의 고대 유물을 회손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제 식민 정책이 만들어낸 역사를 정식 역사서로 보고 “부도지”와 “한단고기”는 검증 되지 않은 정식 역사서로 볼 수 없다는 환경 속에서 우리의 국가적 혼과 민족의 전래 정체성은 뭍혀졌다.





- 우리의 안일한 자세 -

주변국의 역사침탈에 무감각하며  오로지 현대의 고도 물질문명 생활철학에 물들어 만족하며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 보도지는 위서(僞書) 인가 -


부도지와 한단고기는 어느 개인의 명문 가문에서 대대로 수백년간 전수 보관 되었던 고대의 역사적 자료가 방대한 책으로 모두 1900년대에 한자어를 한글로 번역된 역사서로  주변 일방에서는 인정 할 수 없는 위서 이다 라는 낙인이 찍인  서글픈 고대 역사책 이었다.


우리는 하찮은 것일 망정 우리것을 다듬고 지킬줄 아는 정성이 부족한
습성이 있지 않은가 생각 한다.

필자가 회음뜸을 연구 창안 했지만 연구의 모든 지식은 고대의서에서
힘을 얻었다. 연구 이후 제현들께서 이해가 안될 정도의 치료위력을 발휘하며 현대의학도 모르는 질환이 감기 낫듯 고쳐지는 굳굳한 자존심 만으로 10여년이 흘렇다.   회음뜸 연구 또한 우리것 지키기 일환 이었다. 어떤이는 뜸(灸)의술은 중국이 원천 이라고 하나 뜸의술의 시작은 태양족 동이족인 우리정통 민족이 처음 이었다.






- 부도지 속의 국혼과 사상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런데 필자는 수년전부터 위 역사서를 탐독 하였던바 위서라고 하기엔 현대 교육으로 물들은  우리의  지식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너무도 심오한 고대사상과 기존 인지된 역사적 합일점등이 일치하고 기타
역사서  “삼국사기” 등과도 일치 하는 점등이 너무 많아 한 개인의 우수한 두뇌로  일방적으로 꾸며 내기에는 방대한 사상과 이론은 차라리 진실에 가깝다고 확신 한다.  



어떤이는 부도지는 누군가 현대에 쓰여진 위서이다 라고 했는데,
머리좋은 현대인 한사람의 능력으로  어떻게 방대한 민족혼과 민족사상, 사료를 만들 수 있겠는가.  마치 불경을 현대인인 조작 할수 없는
것과 같다.






- 과학적 검증 -

일본과 중국은 없는 역사를 근거도 없이 만들어 붙이기도 하는데 우리는 방대한 자료가 있음에도 “과학적 검증”을 문제로 방치 하였다.
역사책이 아니 드래도 어느 책이든  읽어 보면  그책의 진실 여부는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사상과 지식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저자의 철학적 분석을 하여 보면 좋은 책이다 아니다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



그러므로 부도지와 한단고기는 1900년대의 사람이 집필 했거나  또는 바로전의 사람의 손으로 썼다고 보기에는 오히려 위서를 입증할 방법이 없는 상황 이다.   현대 한의학의 이론이 현대 의술로 풀기에도
많은 난제가 있는데 고대 사상을 현대의 두뇌로 이해 하는것 또한 무리가 많다.





- 세종때 천문학 책_

필자와 교분이 있는 분이 이조 세종때 쓰여진 난해한 한자어로 쓰여진 “천문학”책을 한글로 번역 하는데 1년여 동안 씨름을 했다.  
그 책의 원문을 보면 한자를 많이 안다고 번역할 책이 아니었다.
동양철학을 이해 하고 있어야 했고, 특히 주역의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해석이 가능 했으며,천문적 지식이 있어야 원문장을 이해 할수 있었다.


세종때 천문학 원문을 한글로 번역치 못했다 해서 본래 원문의 진실이
사라진것이 아니며 모르고 이해치 못하여 그 진실이 잠자고 있는 것
뿐이다.


그 천문학 책에는 한 예로 비와 우박, 벼락의 종류가 수십 가지 인데  어떤 종류의 우박이 내릴 경우는 농사에 어떤 변화가 오고,어떤 종류의 벼락이 치면 국사에 어떤 일이 생기고, 어떤 별이 움직이면 나라의 전쟁이 생기고 하는 천문으로 세상을 보는 책인데,

오늘날 천체 망원경이 있어야 보이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었으며  그때 그린 천문도가 지금에도  정확한 위치의 별들의 연구 성과를 무엇으로 설명 해야 할까.



과학 시대에 사는 우리가 비또는 벼락을 이해 하는 것은 구름이 물이
되어 비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정도의 지식 뿐인데  현대의 어떤 지식으로  세종때 천문학을 이해 할수 있으며  오늘의 과학으로 인정 할수 있겠는가.  



이처럼  고대역사의 난해한 부분을 현대 교육을 이수한 사람의 지혜로 이해 하는것 또한 우리의 지혜가 짧음으로 이해치 못함으로 보아야 할부분이 많이 있다.  






- 부도지는 진서(眞書) 이다 -

때문에 부도지는 과학적 해명이 아닌  전체적 책체계와 고대사상을 이해 하였을때 진서라는 향기를 누구나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大韓國人의 자존심 부도지 -

그래서 필자는 부도지와 한단고기의 역사적 내용의 근본을 그대로 전하면서 위서다, 진서다의 논란을 떠나서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적 민족 자존심을 “부도지”를 통해서 재 조명 하고져 한다.

그리고, 한국문화가 마치 중국에서 나온것 같은 잘못 인식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찿아 보고 우리의 우수한 본체성을 고찰 하고져 한다.

더욱이,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민족적 자존심에 열붙은 우리국민의 대동단결의 역사적 구심점이 되기를 희망 하며 우리의 과거 영광을 되찿는 정신적 지주에 도움이 되고져  이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필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사찰에 있는 조그만 암자 “삼신각”을 존중 한다. 종교와 역사는 엄연히 분리 이해 되어야 한다 생각 한다.